파차파 캠프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5년(또는 1904년 말)에 설립한 곳입니다. 이 정착촌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위치해 있었으며, 전성기에는 약 30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했습니다.

1904년 3월 23일 리버사이드에 도착한 도산은 곧 한인 노동국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당시 노동 알선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한인들은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산은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인 노동국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한인 노동자들은 한인 노동국을 통해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역 농장주이자 리버사이드 갈보리 장로교회 장로였던 코넬리우스 럼지(Cornelius E. Rumsey)는 도산의 리더쉽과 덕목에 감명을 받아 한인 사회를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럼지는 리버사이드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들을 고용했습니다. 도산은 나중에 럼지로부터 1,500달러를 대출받아 조선노동국을 설립하게 됩니다.

파차파 캠프는 20개의 건물과 커뮤니티 센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목조 건물은 바람이 새어들어 매우 춥고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메리 백 리는 회고록 ' 조용한 오디세이: 미국의 선구자 한인여성'에서 파차파 캠프에서의 열악한 환경을 회고 했습니다.   

파차파 캠프는 결혼식, 출산, 장례식, 파티, 그리고 한인 독립운동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1911년 12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3차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들도 수용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단순한 노동 수용소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현지 공동묘지에 묻히기도 했습니다. 대한인국민회 회원이자 파차파 수용소의 저명한 회원이었던 김순학은 현지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김인수(김인수라는 이름으로도 활동)에게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의 자녀들 중 일부는 리버사이드에서 머물고, 생활하고, 일하고, 죽었습니다. 김용련(김인수의 아들이었다)의 마지막 딸인 바이올렛 캐서린 김은 자매인 말리, 루시와 함께 리버사이드에 살았습니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좋아했던 바이올렛은 리버사이드와 그랜드 테라스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나바 가족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메이코가 이나바 가문으로 결혼한 후에도 바이올렛과 이나바 메이코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캐서린과 메이코의 우정은 평생 지속되었습니다. 캐서린은 2018년에 사망하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의 올리브우드 묘지에 있는 부모님 곁에 묻혔습니다. 

파차파 캠프는 수 년간 번성했는데 1905년부터 1913년까지 한인 노동자들은 오렌지와 귤 등이 풍부하여 번창하던 도시 리버사이드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인 철도 노동자 숙소였던 이 정착지에는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이 거주하는 한인 공동체였습니다. 지역 신문인 리버사이드 프레스 (현 프레스 엔터프라이즈)는 공동체의 규모, 지역사회 참여, 활동 등을 언급하며 여러 차례 이 캠프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1913년 한파로 오렌지 산업은 크 타격을 입었고 일자리가 크게 줄어 들었습니다. 리버사이드의 많은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많은 한인들도 리버사이드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부는 윌로우스, 다뉴바, 리들리 등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른 한국인들은 로스앤젤레스와 남부 캘리포니아의 주변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1918년 한인 인구가 급감하여 파차파 캠프는 더 이상 공동체 역할을 못하게 되었고 근처 바인 스트리트으로 옮기면서 폐쇄되었습니다.

파차파 캠프의 이야기는 UCR 학부생들이 "한인 정착지"가 그려진 1908년 샌본 보험 지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장 박사는 신한민보 등의 한글 신문 기사를 통해 파차파 캠프가 실제로 미국 최초의 코리아타운이라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도산의 공화국이라고도 불렸던 이 캠프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적 자본을 형성하며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장태한 박사에 따르면 도산 안창호 선생이 리버사이드에 정착한 시기는 지금까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서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파차파 캠프의 실체와 의미 그리고 스토리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 12월 리버사이드 시는 파차파 캠프를 리버사이드 시 첫 번째 문화 관심지로 지정했습니다. 2017년 3월 23일 현재 3096 Cottage Street에 있는 파차파 캠프의 옛 장소에서 현판식이 열렸습니다. 현재는 남 캘리포니아 가스 회사가 이 부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파차파 캠프 표지판이 세워져서 파차파 캠프가 있던 위치를 표시하고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